사업하는 장면을 소비하는 사람들
얼마 전 지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AI로 주식 종목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인데, 월 구독료를 받는 모델이라고 했다. 어떤 서비스인지 궁금해서 살펴봤다. 그런데 볼수록 의문이 생겼다. 전통적인 증권사 앱이나 토스증권에서도 온갖 투자 정보와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사람들은 왜 굳이 여기에 매달 돈을 내야 할까?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기존 서비스가 해결하지 못하는 어떤 불편을, 누구를 위해 해결하려는지. 하지만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 더 의아했던 건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은 듯했다는 점이다. 무엇을 만들지는 분명했지만, 누가 왜 써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수요를 정확히 짚거나 완벽한 제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가설은 틀릴 수 있고 제품은 고치면 된다. 하지만 고객이 겪는 문제 자체를 고민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사업을 한다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비슷한 의문이 든다. 사람들이 이걸 왜 써야 하지? 이상하게도 그 답보다 자신의 경력과 전문성, 사용한 기술에 대한 설명이 훨씬 길 때가 많다. 마치 만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고객이 사용할 이유까지 설명해주는 것처럼. 해결할 문제보다 만들 수 있는 제품이 앞서는 셈이다.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사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개발자들 톡방에서는 새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하나를 만들고 다음 것을 만들고, 어느새 다섯 번째 SaaS를 완성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개발 자체가 즐거워서 만든 것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업의 관점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불편을 겪고 있으며 왜 지금의 해결 방법을 버리고 내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 문제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생각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만드는 사람에게 출시는 긴 이야기의 결말이다. 밤을 새워 개발하고 마침내 배포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고객에게는 그날 인터넷에 모르는 서비스 하나가 더 생긴 것뿐이다. 내가 여섯 달을 썼다는 사실이 고객이 6분을 내줘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사업하는 장면들
사무실을 구하고 고오급 책상을 들여놓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회사 이름을 짓고, 로고를 만들고, 명함에 CEO를 새긴다. 대화에는 C레벨, 지분, 퍼널, ROI 같은 단어가 등장한다. 공유오피스에서 회의하고, 투자자와 악수하고, 데모데이 무대에 서고 박수를 받는다. 사람들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고 잘 될 거라고 한다. 이제 제법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활동이 모두 쓸모없는 건 아니다. 좋은 사무실이 필요한 사업도 있고, 네트워킹에서 첫 고객을 만나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들이 수단이 아니라 성과처럼 취급될 때다. 발표를 잘한 날과 실제로 고객의 불편을 줄인 날은 다르다. 투자자와 명함을 교환한 횟수와 고객이 결제한 횟수도 다르다.
예비창업패키지 발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일은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심사위원이 1점을 더 주는 것은 시장에서 고객이 한 명 더 생기는 일이 아니다.
지원금이 사업을 진전시킬 수는 있어도, 심사위원의 승인이 곧 고객의 선택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업놀이의 보상은 빠르다
왜 사람은 이런 장면에 끌릴까. 생각해보면 사업은 보상이 몹시 늦다. 고객에게 연락해도 답이 없고, 겨우 만난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는 말을 듣는다. 어렵게 얻은 첫 고객마저 어느 날 조용히 떠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반면 사업가처럼 보이는 일은 보상이 빠르고 명확하다. 사업자 등록을 하면 그날 대표가 된다. 명함을 만들면 직함이 생긴다. 데모데이에서는 박수를 받고, 출시 소식에는 축하 댓글이 달린다. 누군가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내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와 별개로, 자신이 유의미한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다. 사업의 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사업의 장면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사업놀이는 게으른 사람의 놀이가 아닐 수도 있다.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시장의 평가와 마주하는 일만 미루는 형태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행위가 피난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런 모습을 그저 허영심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다. 퇴사 후 새로운 진로를 찾거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과정에서, 뜻대로 기회가 열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창업은 새로운 가능성이 된다. 누군가 나를 채용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서비스를 개발하고, 지원사업을 준비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미묘해질 수 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 사람들에게 했던 확언에 비해 결과는 잘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이때 사업하는 장면의 소비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열심히 개발하고, 네트워킹하고, 사업에 필요한 "절차"들을 챙기고, 크고 작은 데모데이에 참여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정작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 스스로도 '나는 지금 중요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믿음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해결했는가?
물론 매출이 없다고 모두 사업놀이인 것은 아니다. 고객이 겪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할 가설을 세워 제품을 만들었지만 실패할 수 있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이라도 그 문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자신의 해결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분명 사업을 향해 가고 있다.

내가 경계하고 싶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활동 자체를 성과로 착각하는 태도다. 오늘 한 일이 누군가의 불편을 더 정확히 이해하게 했는가. 그 불편을 해소할 방법을 찾았는가. 고객의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고, 그 대가를 지불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확인했는가. 아니면 그저 내가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는가.
사업이란 결국 누군가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 이전에는 없던 부가가치를 만들고, 그 일부를 대가로 얻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사무실도, 근사한 직함도, 완성된 서비스도 그 일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사업가처럼 보이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이 전진했는지는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얼마나 가까워졌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고객은?